[글로벌에픽 나영선 기자] 준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강간죄와 동일하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준강간죄의 성립을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심신상실이란 만취나 장애 등으로 인해 변별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여러 사유로 물리적, 심리적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뜻한다.
최근 재판부는 이러한 준강간죄의 성립요건을 과거에 비해 더욱 폭넓게 해석하여 준강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준강간의 불능미수’ 개념이다.
준강간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술이나 약, 잠에 취하여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가 범행 직전이나 도중에 정신을 차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이 때 피해자가 당혹감이나 수치심 등 여러 사유로 인해 즉시 저항하지 못하여 범행이 지속될 경우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 행위를 한 것은 인정되지만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준강간 혐의를 적용 하자니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여서 준강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여러 준강간 관련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합의된 성관계’라 주장하며 준강간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러나 최근 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을 준강간의 불능미수로 보아 준강간죄를 인정했다. 불능미수는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의 착오로 인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범죄의 위험성이 있을 때를 의미한다. 즉, 상대방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라고 생각하여 그 상태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는데 알고 보니 피해자가 의식이 있던 경우라면 준강간의 불능미수로 보고 법정형의 1/2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지금까지 준강간 사건에서 방어수단으로 의례히 적용해 왔던 피해자의 상태를 함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에서 단순히 피해자의 상황만 가지고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일반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당시 피고인이 정신적, 신체적 사정으로 성적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을 준강간할 위험성이 존재한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유앤파트너스 이준혁 경찰출신변호사는 “준강간을 비롯해 여러 성범죄의 처벌 수위나 성립 요건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강화되어 새로운 법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사건에 임하면 매우 불리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므로 최신 경향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법리를 검토해 적용해야 한다. 처벌이 무거운 준강간 등 혐의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영선 글로벌에픽 기자 epic@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