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픽 이수환 기자] 이혼제도는 크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눌 수 있다. 유책주의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자, 곧 유책배우자가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며 파탄주의는 잘못의 원인 제공자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 부부 모두에게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제도다.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는지 아닌지 여부는 당사자의 혼인계속의사, 파탄의 원인에 관한 당사자의 책임 유무, 혼인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당사자의 연령, 이혼 후의 생활보장 등 혼인관계에 관한 여러 사정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우리 대법원은 1965년 9월, 유책주의를 채택한 최초의 판결을 내린 이후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해 왔으며,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일 유책배우자이혼을 인정할 경우, 부정행위 등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쫓아내기 위해 이혼을 악용할 수 있으며 상대방 배우자는 혼인파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고통, 생계곤란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을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렵다면 유책배우자이혼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더 이상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복수의 감정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예외적으로 파탄주의의 적용 범위를 늘려왔다.
만일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른 후,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명백한 데도 보복의 감정이나 오기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정될 수 있다.
실제로 서울가정법원은 약 25년간 별거를 한 부부의 이혼 사건에서 유책배우자인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25년간 남편이 이중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으며 현재의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도 남편과 아내의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 유책배우자이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혼인관계를 회복하거나 이어갈 의사가 실질적으로 없다는 점을 유책배우자가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YK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이혼전문변호사 박수민변호사는 “유책배우자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을 지속해오거나 유책행위를 한 날로부터 많은 시일이 지나가 그에 대한 책임소재나 비난의 정도가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배우자가 이를 외면하거나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러한 점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해 유책배우자이혼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epic@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