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환경부에서 주최하고, 국가환경교육센터,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 글로벌에픽이 공동으로 주관한 ‘2022 환경작가 리더양성 교육과정’에서 나온 시민 환경작가의 기사입니다.PANTONE. Very Peri. 2022년 팬톤 올해의 색이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내가 활동하던 모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의 온도’라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의 활동은 ‘나의 색을 만나다’라는 주제의 그림과 글을 창작하는 것. 내가 결정한 색은 올해의 색인 보라색! 색에 맞춰 보랏빛 초상화를 그리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모임 사람들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올해의 색인 보라색 옷을 입고 화려하고 다채롭게 결과물을 나누고 싶었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입고 싶은 수많은 옷을 장바구니에 넣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옷장에 있는 옷이 떠올랐다. 결혼 전에 자주 입던 보라색 바지. 장롱 깊은 곳에 있던 그 바지를 꺼내 보았다. 추억이 많은 바지라, 버리지 못했지…. 그런데 너무 낡아서, 새로 사야 하나 싶었다. 새 옷으로 ‘힙’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바로 <KBS 환경스페셜 ‘오늘 당신이 버린 옷, 어디로 갔을까?’—쓰레기통에 버린 적 없는 누군가 입을 줄 알았던 옷>
70억 명이 살아가는 지구에서 매년 생산되는 옷은 1,000억 벌, 그리고 버려지는 옷은 33%인 330억 벌. 헌 옷 수거함에 수거된 옷들은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아프리카 가나 칸토만토 시장에 매주 들어오는 옷은 1,500만 벌. 가나 인구의 절반 치다. 그중 거래되지 못한 40%는 시장에서 1km 떨어진 오다우강에 버려진다. 물고기 대신 옷으로 가득 찬 강. 강가의 들소들은 버려진 옷을 먹이로 착각해서 먹는다. 이제 오다우강을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니라 옷 무덤이다. 오다우강에서 바다로 흘러간 옷들은 바다 쓰레기가 되고 만다. 가나의 어부들이 건져내는 그물 속에는 물고기 대신 버려진 옷들이 미역처럼 늘어져 있다. 그들은 버려진 옷 탓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 옷 수출국 5위. 한국의류섬유재활용협회 유종상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헌 옷을 처리하거나 유통되는 경로가 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내가 헌옷수거함에 넣은 옷들도 수출되어 가나에 쓰레기로 남겨졌겠다 싶다.
만일 개개인이 옷 소비를 줄이면 가나에 수출되는 헌 옷이 줄어들까? “일반 의류기업들은 생산한 옷의 30% 판매를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아예 옷을 생산할 때부터 반이 훌쩍 넘는 양은 폐기를 전제로 한다는 거지요.”, “트렌치코트로 유명한 영국 명품 기업이 개당 200만 원을 웃도는 멀쩡한 옷과 화장품 등 약 420억 원어치를 불태워 없앴다가 입길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최원형, 착한 소비는 없다, 자연과생태, 2020)
물론 소비자에게 새 옷을 사기보다 옷을 오래 입기를 권하는 파타고니아 같은 미국 의류기업도 있다. 스스로 옷을 고쳐 입을 수 있도록 회사 홈페이지에 40여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임선옥의 파츠파츠는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이다. 그녀는 재단할 때부터 폐기물이 나오지 않도록 세심하게 디자인한다. 팔리지 않은 옷들은 그다음 해에 디자인에 변형을 주어 신상품으로 판매한다. 그래서 그녀의 브랜드에는 재고가 없다. 프랑스는 2022년부터 기업에서 판매하지 못한 약 20억 유로(약 2조6818억 원)에 달하는 의류 재고 제품을 소각 불가하도록 법령을 제정했다. 낭비방지순환경제법(AGEC)의 결과이다. 이처럼 매년 버려지는 330억 벌의 옷을 줄이려면 의류기업과 정부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나한테도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조금 꽉 끼어 불편하지만, 보라색 바지를 입기로 한다. 남의 나라에 쓰레기를 버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헌옷수거함은 쓰레기통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모임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어떻게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이 지금도 맞느냐며 감탄했다. 모임 사람들에게 쇼핑을 억제했던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나만의 아름다움을 위해 지구를 더럽힐 수 없었다고. 새 옷을 구매하거나, 헌옷수거함에 버릴 때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고 제안해본다. 개개인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 낼 거라 믿는다.
참고자료
- 최원형, 착한 소비는 없다, 자연과생태, 2020
이문영 글로벌에픽 객원기자 epic@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