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7(금)
[글로벌에픽 이현수 객원기자]
본 기사는 환경부에서 주최하고, 국가환경교육센터,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 글로벌에픽이 공동으로 주관한 ‘2022 환경작가 리더양성 교육과정’에서 나온 시민 환경작가의 기사입니다.

나는 김포시에 산다. 광역버스를 타야 서울에 갈 수 있다. 창밖의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려 스크린의 ‘경기 소식’을 무심코 본다. 눈길을 끄는 자막이 있다. ‘경기도, 모든 가금 농가, 방사 사육 금지’. 밑도 끝도 없이 ‘방사 사육 금지’라니 무슨 말인가? 올해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뛰노는 방사 가금류가 AI에 취약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양계장은 닭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일까? 편안했던 내 사유의 공간은 방사 닭, 오리 덕에 안락을 잃었다.

경기도의 이 조치는, 충남 천안 봉강천 주변에서 포획된 야생조류에서 H5N1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검출돼 위기 단계가 '주의'에서 '심각'으로 격상한 데 따른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다양한 포유류·조류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야생 물새류가 자연 숙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면역력이 강한 철새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양계장에서 자란 닭이나 오리는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가금류가 대량 사육되는 농장에서는 전염이 더 빨리 일어나면서 집단 폐사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 바이러스의 전파는 농장을 이동하는 사람이나 차량, 축산물에 의해서 상당 부분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양계장은 닭들의 안전한 보호막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인근에서 사육하는 가금류는 모두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 굳이 다행스러운 점을 들자면, 2020년 겨울까지만 해도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3㎞ 안 농장 가금을 ‘예방적 살처분’했는데, 2021년부터는 위험도 평가에 따라 범위를 조정해 살처분 피해를 줄이고 있다는 정도다. 현재 정부는 고병원성 AI 발생 농장 반경 500m 안의 모든 가축을 살처분(오리에 발생 시 1㎞ 내 오리 추가 살처분)하고 있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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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농가 범위가 조정되기 전인 2018년, 익산에서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인 ‘참사랑농장’을 운영하는 유소윤(55)씨의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유씨는 익산시와 행정소송 중이었다. 아프지 않은 닭 5천 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하라는 행정명령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사랑농장에서 2.4km 떨어진 하림 직영 육계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닭이 발견돼, AI 보호구역인 반경 3km 안에 있는 참사랑농장에도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왔다. 익산시는 ‘3km’라는 조건만 따졌다. 사실 3km라는 기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행한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반경 500m부터 3km는 보호지역이다. 닭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타지역 반·출입이 금지되지만, 시·도 가축방역관의 위험도 평가 결과 이상이 없고 정밀검사 결과 음성 판정된 농가에 한 해 출하가 허용되는 것이다.

익산시는 반경 3km 내에 있는 17개 농장 중 참사랑농장을 제외한 농가의 닭 85만 마리를 생매장했다. 소송 덕분에 유씨의 농장 닭들만 위법성 여부가 가려질 때까지 살처분 집행이 정지된 것이다.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은 유씨의 닭 5천 마리는 네 차례 검진을 통해 모두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5천 마리 닭들은 아직 건강하게 잘 산다. 이들과 작년 9월에 들여온 5천 마리까지 해서 총 1만 마리로 농장을 운영 중이다. 살처분 대상이었던 5천 마리는 이제 3살 된 아이들이다. 올여름 폭염에도 한 마리 죽지 않고 잘 이겨냈다. 같이 싸우던 애들은 하루 1800~2000개 가량 달걀을 낳는다”

위의 사례로도 알 수 있듯이 방사하여 키워지는 닭, 오리들은 고위험성병원균를 잘 견뎌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닭과 오리의 방사 사육을 금지한 경기도의 이번 결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조치일까? 방사 닭은 충분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축산 가금류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움직이기조차 힘든 비좁고 열악한 양계장의 사육 환경이다. 돌아오는 길, 안락한 사유의 공간이었던 버스 안이 이제 자유롭지 않다. 횃대에 올라 맘껏 울음 울던 공간으로부터 가둬져,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형벌을 받고 있을 그 닭과 오리의 죄명은 대체 무엇일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잘못이 없을까? 비좁고 숨 막히는 감옥과도 같은 공간 속에 그들을 가둘 권리에 우리에게 있을까?

무려 44년 전인 1978년 10월 15일 유네스코 본부에서 선언된 세계동물권선언의 제1조는 “모든 동물은 생태계에서 존재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의 평등은 개체와 종의 차이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선언했다. 또, “인간은 동물의 한 종으로서 다른 동물을 몰살시키거나 비인도적으로 착취할 권리를 사칭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둬진 방사 닭, 오리는 여전히 방사 닭·오리라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생태계에 존재할 평등할 권리를 착취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들이 방사 닭. 오리로 불러질 당연한 이유마저 잃게 한 것은 아닐지.

참고자료
- 신소윤, 「“건강한 닭도 죽이라고요? 기계적 살처분 말아주세요”」, 한겨레, 2018.10.2.
[환경부×시민기자단] 갇혀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방사 닭일까요?


이현수 글로벌에픽 객원기자 epic@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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