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예금자보호한도 5,000만원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예금보험공사와 은행, 저축은행이 상호 간에 이른바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한도 상향이 현실화될 경우 이어질 변화를 두고 예보와 은행, 저축은행의 입장이 각각 상반되기 때문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보는 지난달 21일과 23일 이틀간 은행·저축은행·보험 등 업권별 협회와 릴레이 비공개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예금자보호제도 손질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의 연구용역보고서 결과를 공유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예금자보호한도 1억원 상향 등을 가정한 시나리오도 포함됐으며, 이날 회의에서는 이와 직결된 예금보험료율 인상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따른 예보료율 인상을 둘러싸고 예보와 은행권 간 기류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예보료는 은행 등이 금융사고로 지급불능 상태에 처하게 됐을 때를 대비해 예보가 사전에 받아 적립해 놓는 돈이다.
만일 은행이 파산했을 경우, 예보가 예금주에게 대신 지급해주는 돈의 재원이 되는 셈이다.
현재 예보료율은 예금액 대비 은행 0.08%, 저축은행 0.4%로, 예보는 각 금융사의 경영·재무 현황에 따라 할인과 할증을 적용하는 등 차등보험료율제를 운영하고 있다.
예보 입장에서는 예보료율이 인상될 경우, 그만큼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는 재원을 충분히 확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은행은 예보료율 인상에 난색을 표명하는 모습이다.
국내 대형 은행의 경우 지급불능 위험이 매우 낮은데도 비용만 더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은행이 망할 일은 사실상 희박한데, 예보료 부담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예보료율이 은행보다 5배나 높은 저축은행은 벌써부터 보험료 증가로 인한 중압감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은행 관계자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일도양단식이 아닌,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은행의 예보료 인상 부담이 고객 대출금리 인상이나 예금금리 인하 등을 초래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코로나19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익성을 크게 확대해온 은행들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바라는 다수 고객의 입장을 고려치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울러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되면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예금 이탈 현상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금 안정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으로 자금이 쏠리는 흐름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이미 일부 은행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예금상품 기발 등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1년 예금자보호한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을 때도 저축은행으로 예금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었다.
이와 관련해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상향 한도 시 일정 수준 예금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만 예보료율도 함께 인상된다면, 얘금 증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오는 8월까지 예금자보호제도 개선과 예보료율 인상 최종안을 마련하고, 10월 국회 보고를 통해 확정한다는 계획이지만, 해당 안건을 둘러싼 예보와 은행, 저축은행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추세를 보더라도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이미 이뤄졌어야 하는 일”이라면서 “지난해 20조원 이익에 이어 올해 1분기 역대급 실적을 올린 5대 은행이 예보료율 부담으로 한도 상향을 주저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박현 글로벌에픽 기자 neoforum@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