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전세보증) 규모가 2년 새 80조 원에서 120조 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이어지고 집값 변동에 의해 ‘깡통전세’ 우려가 늘어난 탓으로 해석된다. 한 사람이 주택 수백, 수천 채를 보유한 이른바 ‘빌라왕’, ‘건축왕’ 등이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가운데, 공인중개사들이 전세사기와 연루된 사례도 속속 등장하며 세입자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상황이다.
지난 1년간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에서 공인중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지난 4월, 경찰청 특별단속을 통해 전세사기로 입건된 피의자 2188명 중 공인중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8.9%, 무려 414명에 달한다. 전세사기 피의자 5명 중 1명은 공인중개사인 셈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보조원이나 임대사업자에게 뒷돈을 받고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주거나 임대인과 공모하여 시세보다 높은 전세금에 세입자가 계약을 하도록 만드는 등 다양한 수법을 활용해 전세사기에 가담하고 있다.
게다가 공인중개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은 무자격자로 밝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무등록자의 불법 중개가 전체 부동산 거래의 3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이 실질적인 주인이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을 ‘바지사장’으로 앉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전세 계약 후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묻는 경우도 등장하는 상황이다. 특히 집값 하락으로 인해 집주인이 자력으로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이를 전세사기로 보아 집주인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에게까지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이다.
전세사기 혐의가 인정되면 형법상 사기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보증금의 액수에 따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되어 처벌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설령 사기 혐의를 벗는다 하더라도 거래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의 과실이 확인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경찰 출신의 법무법인YK 송준규 변호사는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해졌다고 하여 그 상태를 무조건 전세사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전세사기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법의 기준에 대한 고려 없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전세사기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의혹이 발생했다면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lsh@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