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하락세를 보였지만 상반기 다시 상승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소비·투자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과일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인 데다 최근 국제 유가마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달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두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식료품 물가 상승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린 탓에 넉 달째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달(3.2%)보다 0.4%포인트(p) 하락했지만 식료품 물가는 0.1%p 소폭 떨어지는 데 그쳤다.
식료품 물가는 사과·배 등 과일이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달 과일 물가는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전체 물가상승률(2.8%)에 대한 과일 물가 기여도는 0.4%p로 2011년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높은 과일값은 지난해 이상 기온에 따른 공급량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사과 등 일부 과일은 병충해 전파 우려로 수입도 쉽지 않기 때문에 여름 과일 출하 전까지 과일값은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일 외 다른 먹거리 물가도 높은 편이다. 식료품 물가를 구성하는 우유·치즈·계란(4.9%), 채소·해조(8.1%), 과자·빙과류·당류(5.8%) 등도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최근 국제 유가 불확실성도 물가 상승세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77.3달러까지 떨어진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친이란 무장세력의 요르단 미군 기지 공격 등 중동 지역 불안이 커지면서 82.4달러까지 반등했다.
지난해 2월 유가가 하락세였다는 점도 기저효과 측면에서 다음 달 물가지수 상승 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1월 중순부터 오른 국제유가는 시차를 두고 2월 물가에 반영될 것"이라며 "상반기까지는 3% 안팎의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를 무기한 연장할 수 없다는 점도 물가에 부담 요인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물가 상방 요인은 유가"라며 "언젠가 유류세를 정상화하면 물가 상승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누적된 물가 부담은 민간 소비·투자를 옭매는 주된 원인이 된다. 식료품·유가 등을 중심으로 고물가가 지속하면 내수 회복도 지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가 둔화세가 답보하면 고금리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더 길어져 내수를 더 제약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고금리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금리 인하 목소리가 높지만 고물가가 여전히 금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신선식품 등 물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물가가 낮아져야 금리도 낮아질 여지가 있고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수 글로벌에픽 기자 lss@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