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작품을 통해 입지를 다진 채원빈이 지난 15일 인기리에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하 이친자)을 통해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자신만의 이름값을 되새기고 있다.
‘이친자’는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 분)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얽힌 딸의 비밀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무너져가며 심연 속 진실을 쫓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제일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아빠한테 그렇게 유대감이 없는데 왜 이렇게 자꾸 믿음을 얻고 싶어 하는지 납득이 안 됐어요. 그래서 초반에 계속 어려워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극 중 채원빈은 아버지 장태수와 날선 심리전을 벌이며 복잡한 내면을 지닌 장하빈 역을 맡았다. 장하빈은 거짓말이 누구보다 쉬운 고등학생이다. 채원빈은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처음에는 이 인물이 형체가 없다 보니까, 인물을 담을 수 있는 상장이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게 사이코인지, 소시오인지 알려주시면 참고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걸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이걸 생각해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소시오인지 사이코인지가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어요. 기획 의도와 맞지 않고, 감독님은 좀 열어두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걸 가두지 말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채원빈은 다부진 연기로 장하빈을 그려내며 장태수는 물론 시청자들마저 혼란에 빠뜨린다. 채원빈은 특유의 신비로운 마스크를 앞세워 캐릭터의 서늘함을 완벽히 표현하며 매 순간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아빠에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내 말 좀 믿어주면 안 돼?"라며 이따금 감정을 드러낼 때는 내면의 상처가 묻어난다.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을 처음 연기하다 보니 새롭게 보는 게 많았어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알았던 것 같아요. 하빈이를 연기하면서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어요. 촬영 중간에 감정이 느껴지면 터져 나올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집 가서 지칠 때까지 운 적이 많았어요. 저는 슬픔은 털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냥 넘어가면 밥 먹고 체한 것처럼 갑갑하고 예민해져요. 별거 아닌 거에 짜증 나고 부정적 기운이 많아져서 차라리 마음껏 울자고 했어요.“
‘이친자’는 방송 전 누가 한석규의 딸 역할을 맡을 것인가를 두고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찌감치 한석규가 29년 만에 MBC에 복귀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이 작품은 한석규의 딸 역할을 누가 맡을지 오래도록 알려지지 않았다.
“선배님께선 ‘우리 직업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건 카메라 앞이 무서워질 때’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즐기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게 현장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선배님 덕분에 이런 경험을 또 해볼 수 있을까 싶은 경험들이 매 순간 있었어요. 사람으로서 날 먼저 궁금해해 주시고, 다가와 주셔서 서로가 맡은 인물이 어떤지 잘 파악할 수 있었어요.”
기라성 같은 대선배 한석규와 부녀로서 연기 호흡을 맞춘 채원빈. 신예답지 않은 에너지로 대선배의 기에 눌리지 않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연기 부담은 없었어요. 선배님이 내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선배님을 너무 좋아해서 얼마 전에도 안부 문자를 드렸어요.”
‘이친자’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딸과 그런 딸을 수상한 행동 때문에 의심을 멈추지 못하는 프로파일러 아빠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다. 자식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석규의 시점을 따라가지만, 이 스토리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딸 장하빈의 역할도 중요했다.
“다른 작품은 참고는 안 하려고 했어요. 어느 정도 구축이 된 상태에서 기능적으로 따왔다면 그걸 참고했을 텐데, 너무 참고하면 의지를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무조건 파고드는 성격인데, 처음으로 '도망갈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 인물이었어요.“
2019년 영화 ‘매니지’로 데뷔한 채원빈은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눈도장을 찍은 작품은 2022년 영화 ‘마녀2’다.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2와 시즌3에도 출연해 또 다른 매력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이 밖에도 웹드라마 ‘비밀의 비밀’, ‘트웬티 트웬티’, SBS ‘날아라 개천용’, tvN ‘어사와 조이’, 영화 ‘런 보이 런’, ‘셔틀, 최강 셔틀’ 등 다수의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좀 더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장르라면 청춘물이에요. 긴 호흡은 아니었지만 단막극을 할 때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요. 해보고 싶은 장르는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많고 안 해본 느낌을 해보고 싶어요. 또 다른 매력으로 힘든, 제가 정말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가진 인물이라면 좋을 것 같아요.“
채원빈은은 오는 12월 18일 첫 방송을 앞둔 KBS2 새 드라마 ‘수상한 그녀’를 통해 또 한 번 연기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는 극 중 50년 전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말숙(김해숙 분)의 손녀 최하나 역을 맡는다. 최하나는 전교 1등만 하던 모범생이 가수가 되기 위해 수능을 포기하고 연습생의 길을 걷는 인물로, 장하빈과 다른 매력을 지녔다.
“하빈이와는 180도 다른 인물이에요. 되게 밝고 목표가 뚜렷한데, 웃음 많고 하빈이와 다르게 솔직한 인물이죠. 그리고 아빠와 굉장히 친하고 허물없는 사이라는 점도 차이점이에요. 구김살 없는 사랑스러운 인물이죠.
'이친자'에서 제대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한 채원빈. 그녀는 꾸밈없이 대화하는 모습 이대로만 해도 모든 캐릭터를 정말 잘 소화해 낼 것 같다. 연기, 그리고 작품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살아있는 배우 채원빈의 색다른 연기 변신이 기대된다.
”'이친자'처럼 오래 기억하고 싶을 만한 작품을 하나 더 하고 싶어요. 10년에 하나씩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하셨던 한석규 선배의 말이 기억나는데, 하나는 이미 있으니 하나를 더 남겨보고 싶어요.“
[사진 제공 = 아우터유니버스]
유병철 글로벌에픽 기자 e ybc@globalepic.co.kr/personchos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