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픽 유병철 기자] '트렁크' 서현진의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다. 서현진은 결혼 때문에 혼자가 되어버린 인물 노인지로 분했다.
그간 여러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로코퀸', '딕션 장인', '믿보배' 등 이름 앞에 완벽한 수식어를 붙여온 그가 아직도 새롭게 보여줄 얼굴이 있다는 것은 반갑다. 온기가 없는 듯 있고, 차분하지만 할 말은 하는 강단이 있고, 예민하지만 간결하기도 한 노인지의 심적 변화를 하나 하나 꾹꾹 눌러 담아 정성스럽게 내보인다. 이 같이 노인지는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다. 모호하다.
서현진은 이 점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백이 많은 작품이라 ‘배우가 해석하기에 따라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이렇게 넓은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전한 바 있다. 여백이 많지만 여유가 많은 드라마는 아니다. 서현진은 조금씩 변화하는 노인지의 복합적인 감정선을 밀도 있게 그러내며 그 사이 사이를 촘촘하게 메워 결국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노인지는 결혼이 직업이다. 1년의 결혼 생활을 위해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다섯 번째 배우자 한정원(공유 분)을 찾아온다. 메마른 표정과 어떠한 정서도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로 기묘한 입성을 한다. 하지만 그 공기는 차츰 온기를 더해간다.
서현진과 공유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 팬들을 설레게 했던 만큼 왜 그토록 두 배우의 호흡을 기다려왔는지를 내내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각기 다른 이유들로 냉담하지만 남과 여의 텐션은 잃지 않는다. 한 앵글에 담기기만 해도 묘한 긴장감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인지가 가뭄에 단비처럼 찰나에 웃는 모습은 서현진 본연의 사랑스러움으로 단번에 분위기를 설렘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두 배우가 만나 미스터리 멜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에 차근차근 답을 내놓는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들의 변화를 다채롭게 그려낸 서현진은 특유의 예민함, 날 서 있음 너머로 정원을 만나면서 겪게 된 진정한 의미의 용기, 서로를 갈망하는 내면 깊은 곳의 순수함 등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을 때에도 밉기 보다는 측은함과 응원을 담아 지켜보게 하고, 진심으로 인지의 행복을 기원하게 한다. 감정을 이입시키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결국 배우의 연기력이다. '트렁크'의 1순위 특장점은 배우 서현진이다.
한편 '트렁크'는 지난달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8부작 전편이 공개됐다.
유병철 글로벌에픽 기자 e ybc@globalepic.co.kr/personchos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