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픽 유병철 기자] 수수하고, 편안한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채수빈. 그는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에서 깊은 감정의 여운으로 희주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킹콩 by 스타쉽 사옥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통통 튀는 발랄함을 내뿜으며 취재진을 반겼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칭찬을 들을 때마다 항상 쑥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너무나 좋은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들, 선후배 동료 배우들을 만나 촬영 현장이 항상 즐거웠어요.”
‘지금 거신 전화는’은 협박 전화로 시작된 정략결혼 3년 차 쇼윈도 부부의 시크릿 로맨스릴러물이다. 협박 전화를 구심점으로 스릴러와 복잡한 가족사 등의 조합과 함께, 순애보 가득한 로맨스 코드가 짜임새 있게 펼쳐져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대본 자체가 재밌었고, 자기 의지대로 문제에 맞닥뜨려 해결해내는 희주의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물론 초반부 말을 하지 못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을 예상했고, 실제 수어나 표정, 몸짓 등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쉽지 않음을 느꼈죠.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다 딛고 마무리하다 보니, 그때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과 만족이 남아있어요.”
채수빈은 극 중 대통령실 대변인 백사언(유연석)과 3년째 쇼윈도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홍희주 역을 연기했다. 함묵증을 겪는 수어 통역사이자, 친아버지와 자신을 둘러싼 압박과 볼모 격의 정략결혼을 받아들인 인물이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스펙트럼 넓은 장르 호흡의 연기 감각을 보여줬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인물이잖아요. 원래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엄마가 ‘너는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가스라이팅을 해왔죠. 자기가 선택한 게 단 하나도 없는 인물이에요. 너무나도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죠. 하지만 그래도 강단 있는 모습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희주의 부분이 잘 보일 수 있게 연기했어요.”
특히 그는 극 중 뉴스, 법정 등에서 다양한 상황을 매끄럽게 통역, 능숙한 수어 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를 위해 채수빈은 촬영 전부터 한국어부터 영어까지 매 상황에 걸맞은 수어를 수 개월간 연습한 것은 물론, 촬영 중에도 수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며 손짓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노력을 거듭했다.
”표현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캐릭터 설정에는 차이가 없었어요. 다만 수어도 언론에서 쓰이는 수어와 국제 수어, 한국 수어가 다 달라서 여러 가지를 새롭게 배워야 했죠. 손짓만큼 표정도 중요한 게 수어라고 알게 되면서 더 노력했는데, 아쉬운 점은 여전히 있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작품을 사랑해주시고 수어를 따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적으로 좀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해요.“
더불어 채수빈은 사언에게 건 협박 전화의 주인공이 희주였음이 밝혀진 후 극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었다. 그는 쇼윈도 부부 생활 중 사언 앞에서 절대 목소리를 내지 않던 희주가 협박범으로 분해 사언과 통화할 때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나가 긴장감을 높였다. 반면, 사언의 도발에 희주가 흥분해 말려들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는 등 캐릭터의 허당기 있는 모습까지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로코물은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판타지처럼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게 매력 아닐까 해요. ‘지금 거신 전화는’도 마찬가지로 순애보적인 사랑이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로망처럼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연석 오빠와는 같은 회사지만 웹 예능 ‘출장 십오야’ 촬영 때나 광고 촬영 때만 마주쳤을 정도로 연결고리가 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작품을 하면서 고민을 나누기도 편했고, 선배로서 잘 이끌어주셔서 좋았어요. 지금은 (이)광수 오빠만큼 친해졌어요. 촬영할 때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배운 것도 있었지만,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아저씨마냥 한가득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는 등 많은 분들을 챙기는 모습에서 크게 배웠어요.“
납치상황에 대한 과감한 대응에서 비치는 변주된 스릴러 감성, 협박 전화를 기반으로 본격화된 소통에 근거한 유연석과의 달달유쾌한 로코 소화력까지 비주얼만큼 다채롭게 비친 그의 연기 질감은 글로벌 시청자들을 제대로 매료시켰다.
”납치당하는 장면도 예상했던 것보다 어려웠어요. 일례로 처음 자동차 납치 장면은 기술적인 이유로 여러 컷으로 나눠 찍으면서, 아침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시간이 소요됐어요. 그 사이 감정선을 조절하는 것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러한 것들이 여러 개 있어서 촬영하면서도 정말 쉽지 않음을 느꼈어요.“
채수빈은 작품이 끝나면 인물과 이별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길고 길었던 감정신으로 지칠법도 할 터. 채수빈에게 슬럼프는 없었을까.
“작품에 들어가면 그 인물을 찾아가는 것이 어렵고, 작품이 끝나면 익숙해졌는데 보내는 것이 힘들어요. 슬럼프는 작품 할 때마다 와요. 그걸 넘기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을 느껴요. 소통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편인데,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해요. 다만 울타리 밖에 대해서는 소통에 목메지 않아요.”
2014년 MBC ‘원녀일기’ 심청 역으로 지상파에 데뷔한 채수빈은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매력적인 외모로 드라마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순한 외모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배역에 도전하며 성장을 이뤘다. 매번 다른 배역마다 자연스럽게 물든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부담감이 느껴지는데,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해요. 분량은 따라가는 부분이 많으니까, 첫 번째는 체력적인 부분을 신경을 써요.”
부족한 경험을 책과 영화, 혹은 친구나 자신의 삶에서 찾아본다는 배우 채수빈은 ‘지금 거신 전화는’을 통해 또렷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연기력을 갖춘 30대 대표 여배우로 거듭났다.
“20대는 마냥 연기가 행복했다면, 점점 보시는 분들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멋지다고 생각되면서도 고민이 되곤 해요.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각각의 무대나 연기가 주는 다른 매력을 체감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좋은 배우로 거듭나고 싶어요. 또한 인간적으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진 제공 = 킹콩 by 스타쉽]
유병철 글로벌에픽 기자 e ybc@globalepic.co.kr/personchos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