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3고(高) 현상으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가운데, 이미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은행 노조가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검토하고 있어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KB국민은행 노조는 통상임금의 300%에 달하는 성과급과 1000만원의 특별격려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위한 쟁의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직원들의 2023년 평균 연봉은 1억1265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대한민국 근로자 평균 연봉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의 경우 평균 연봉이 1억1821만원으로 5대 은행 중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1억1566만원), 농협은행(1억1069만원), 우리은행(1억969만원), 신한은행(1억898만원)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은행권은 2024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통해 일반직 기준 2.8%의 임금 인상을 확정했다. 이는 전년도 인상률 2.0%보다 0.8%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성과급과 현금성 포인트 등 각종 보상도 확대되었다.
국민은행, 1000만원 특별상여금 요구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KB국민은행 노조의 성과급 요구다. 노조는 통상임금의 300%에 달하는 성과급과 1000만원의 특별격려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 성과급인 통상임금의 280%보다 대폭 확대된 수준이다.
노조 측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먼저 성과급 산정 기준이 불투명성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실제 영업이익과 성과급 연동이 불명확하다며, 성과급 산정 과정에서 노조의 참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이자이익 증가가 실적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과급 지급의 형평성도 문제삼고 있다. 노조는 임원과 일반직원 간 성과급 격차가 과도하며, 직급별, 부서별 성과급 차등 폭이 너무 크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기준 실적의 일관성이 부재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시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영진이 임의로 목표치를 조정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이러한 노조의 요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선 경영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고금리 기조 전환에 따른 수익성 악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또한 성과주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적과 성과에 따른 차등 지급은 불가피하며, 부서별, 개인별 성과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행 성과급 체계는 이사회와 주주 승인을 거친 정당한 제도이며, 타 산업 대비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자 장사로 돈 많이 벌지 않았냐"
은행권 노조가 이처럼 공격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해의 호실적이 있다. 5대 은행의 2023년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11조78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6%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적 개선의 이면에는 시장 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대출 금리는 높게 유지하면서 예금 금리는 낮춘 '이자 장사'가 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11월 은행권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1.41%포인트로, 2023년 8월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요구하자 은행들이 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대출 금리는 올리면서 예금 금리는 내린 결과다.
임금과 성과급 외에도 은행권은 2024년 임단협을 통해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대폭 확대했다. 특히 출산·육아 관련 혜택이 크게 늘어났다. 초등학교 1~2학년 자녀를 둔 직원은 30분 늦게 출근할 수 있게 되었고, 초등학교 입학 자녀를 둔 경우에는 약 2개월간 오전 10시 출근이나 오후 5시 퇴근 등 단축 근무가 가능해졌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기존 10일에서 20일로, 난임 휴가는 3일에서 6일로 확대되었다. 육아휴직 기간도 산전후 휴가를 제외하고 2년에서 2년 6개월로 늘어났다. 이 외에도 각 은행들은 출산 경조금, 육아교육 보조비 등을 대폭 확대했다.
현재 대부분의 은행들은 노사 협의체를 통해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을 논의 중이며, 일부 은행은 성과급 산정 과정에서 노조 참관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성과급 지급 시기와 방식에 대한 세부 조율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은행권의 임금 인상과 성과급 확대는 결국 고객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건비 상승은 결국 대출 금리 인상이나 수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경제 상황과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서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며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성과급 요구를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무리한 성과급 요구를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과도한 이자장사에 치중하는 은행도 반성할 점이 있다"고 말했다.
[안재후 글로벌에픽 기자/anjaeho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