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새로운 수장을 맞이했다. 2025년 1월 2일 취임한 이환주 제9대 KB국민은행장은 '신뢰'와 '동행'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은행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30여 년간 KB금융그룹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금융상품 판매를 넘어 '신뢰를 파는 은행'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 91년 주택은행 수석 입사 ... 지주 CFO로 활약
1964년생인 이 행장은 선린상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1991년 주택은행 수석 입사자로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대등합병 이후, 그는 다양한 요직을 거치며 KB금융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특히 강남교보사거리지점장, 스타타워지점장, 영업기획부장 등을 역임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외환사업본부장과 개인고객그룹 상무를 거쳐 전무로 승진했다. 2020년에는 KB국민은행 경영기획그룹 부행장을, 2021년에는 KB금융지주 재무총괄(CFO) 부사장을 지내며 재무통으로서의 면모도 입증했다.
■ 생보사 M&A 성공...요양사업 진출 성장동력 확보
2022년 KB생명보험(현 KB라이프생명보험) 대표이사로 선임된 후, 이 행장은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했다. 푸르덴셜생명과의 성공적인 통합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보장성보험 중심의 영업 전략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했다.
통합 첫해인 2023년, KB라이프생명의 당기순이익은 2,562억원을 기록해 통합 이전인 2022년(1,358억원) 대비 88.7% 증가했다. 특히 보장성보험 신계약 연납화보험료(APE)는 전년 4,459억원에서 5,415억원으로 약 1,000억원 증가하는 등 수익성 중심의 성장을 이뤄냈다.
더불어 요양사업 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도 주력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를 자회사로 편입하여 요양사업에 진출했으며, 이는 생명보험과의 시너지를 고려한 '묘수'로 평가 받았다.
■ 홍콩 ELS 불완전판매 해결 등 난제 산적
그러나 진짜 실력 검증은 지금부터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 행장이 이끌어나가야 할 KB국민은행의 현재는 녹록지 않다. 2023년 홍콩 H지수 ELS 손실로 인한 불완전판매 의혹과 내부통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8조원 규모의 홍콩 ELS 판매로 인해 2023년 1분기에만 8,620억원의 충당금을 손실로 반영하며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2023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2조 6,179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 8,554억원) 대비 8.3% 감소했다. 이는 시중은행 중 3위에 그치는 실적으로, 1위 신한은행(3조 1,028억원)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순이자마진(NIM)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3분기 NIM은 1.71%로 전년 동기 대비 0.13%포인트 하락했다. 시장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자산의 리프라이싱 가속화와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행장에게는 KB국민은행을 질적, 양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할 힘겨운 과제가 있는 것이다.
■ 금융상품 판매를 넘어 신뢰를 파는 은행이 되자
이 행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상품을 파는 은행을 넘어 고객과 사회에 '신뢰를 파는 은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그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자세를 강조하며,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KB라이프생명에서 보여준 그의 경영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한다.
내부통제 강화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속도감 있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브레이크'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잘 작동해야 한다"며 자율과 규율의 조화를 강조했다. 특히 임직원 모두가 '휘슬 블로어'가 되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 글로벌 사업 강화와 디지털 혁신
이 행장이 추진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글로벌 사업 강화다. 특히 인도네시아 법인 KB뱅크(전 부코핀은행)의 경영정상화가 시급하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약 3조 1,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1조 5,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혁신도 중요한 과제다. KB스타뱅킹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023년 하반기 기준 1,262만명으로 시중은행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이 7년 만에 실명계좌 제휴 은행을 농협은행에서 KB국민은행으로 변경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 양종희 회장과 그룹차원 시너지 효과 기대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 행장이 은행과 비은행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순이자마진 하락, 경기 둔화에 따른 리스크 증가 등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수익성 개선과 리스크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KB스타뱅킹 밸류업으로 금융을 넘어 일상을 함께하는 디지털 퍼스트 기반의 KB플랫폼 생태계를 확장하며, 대면 채널의 경우 온전히 고객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업무환경으로 운영모델을 혁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행장의 취임으로 KB국민은행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신뢰'와 '동행'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확장, 내부통제 강화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