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우리은행 수장으로 취임한 정진완 행장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한 정 행장은 1995년 당시 '빅5'로 불리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중 한일은행에 입행하며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와 1999년 상업‧한일은행 합병, 한빛은행을 거쳐 현재의 우리은행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영업 일선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그의 이력은 영업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런던지점 과장, 우리아메리카은행 부장을 거치며 글로벌 금융 감각을 익혔고, 종로3가지점장, 기관영업전략부장, 중소기업전략부장, 삼성동 VG영업그룹장, 테헤란로 VG영업본부장, 본점영업부 VG영업본부장을 역임하며 국내 영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특히 중소기업그룹장과 중소기업그룹 집행부행장을 지내며 중소기업 금융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취임과 동시에 정 행장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신뢰 회복이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은행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정 행장은 '진짜 내부통제'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형식적인 통제가 아닌,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자본비율 관리도 절실한 상황이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우리은행의 BIS 총자본비율과 보통주자본비율은 각각 16.4%와 13.3%로, 다른 시중은행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보험사 인수 등 향후 전략적 투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지표다.
이러한 자본비율 관리를 위해 우리은행은 2023년 말부터 기업대출 영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2023년 11월에는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잔액이 각각 4,818억원, 2조 2,993억원 감소했다.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양대 대출 부문에서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정 행장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신뢰', '고객 중심', '혁신'이라는 핵심 경영 방침을 제시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조직 문화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통해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조직과 직원의 동반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정 행장은 조직 효율화에도 착수했다. 개인그룹과 부동산금융그룹을 개인그룹으로, 자산관리그룹과 연금사업그룹을 WM그룹으로, 중소기업그룹과 대기업그룹을 기업그룹으로 통합하는 등 의사결정 체계를 간소화했다. 최근 부행장 정원을 기존 23명에서 18명으로 줄이고, 기존 부행장 가운데 11명이 물러나는 등의 임원 인사를 단행해 조직의 효율성을 높였다.
수익성 지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2023년 3분기 우리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40%로, 1분기(1.50%)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우리금융은 금리인하에 대비해 원화핵심예금 증대와 비은행 자회사 조달비용 감축을 추진하며 NIM 하방 압력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핵심예금 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 3분기 핵심예금 비중은 전년동기(31.7%) 대비 2.1%p 감소한 29.6%를 기록했다. 다만 월평잔 규모로는 전년 대비 2조원 증가한 93조 1,000억원을 달성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핵심예금은 요구불 및 저축예금과 개인 및 기업자유예금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은행의 안정적인 자금조달 기반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계파문화 청산, 미래 성장동력 확보 위한 청사진 제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상업파'와 '한일파'로 나뉜 우리은행의 오랜 계파문화 청산 시도다. 이를 위해 정 행장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함께 1월 3일, 상업·한일은행 퇴직 직원 모임이었던 동우회를 '우리은행동우회'로 통합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청사진도 제시됐다. 우리은행은 AI와 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 분야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현지화 전략, WM 분야 성장, 디지털 경쟁력 확보 등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현재 우리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면, 2024년 3분기 기준 총대출 약 340조원 중 기업대출이 191조원, 가계대출이 145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이 136조원으로, KB국민은행의 전체 기업대출 규모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이성욱 우리금융 최고재무책임자는 "올해 핵심예금 증가가 NIM 하락 방어에 가장 중요하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객 확대를 위한 30가지 핵심예금 증대 방안을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은행 고객이 은행 핵심예금에 적극 가입할 수도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 자산을 늘리려면 금리 경쟁을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기업금융이 근간이긴 하지만 속도조절이 필요하고 다시 영업을 활발히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정 행장의 실용적 리더십이 우리은행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 행장의 풍부한 영업 경험과 실용주의적 접근이 현재 우리은행이 직면한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 금융 분야에서의 전문성은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재후 글로벌에픽 기자/anjaeho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