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주총) 시즌을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외이사 구성에 변화가 감지됐다. 한국CXO연구소가 발표한 '2019년과 2025년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특징 비교 분석'에 따르면, 교수 등 학자 출신 사외이사는 감소한 반면 고위공직자 등 관료 출신 인사의 영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차관급 고위 관료 출신 사외이사는 2019년 2명에서 올해 8명으로 4배나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생명보험은 구윤철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 및 국무조정실 실장,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호승 전 기획재정부 1차관 및 대통령실 정책실장, 삼성E&A는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DB하이텍은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이정섭 전 환경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눈에 띄는 점은 삼성 계열사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고위 경제 관료들의 영입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구윤철 전 실장과 이호승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기재부 차관으로 동시에 임명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권 교체 시 경제부총리로 기용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삼성으로서는 집권 가능성이 높은 정당과 네트워크가 풍부한 인사를 영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사회 규모는 축소, 여성 및 40대 사외이사는 증가
이번 조사는 국내 50대 그룹 주요 계열사 중 사외이사가 6년 임기를 채워 의무 교체해야 하는 기업 42곳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 2019년 56명이던 사외이사 자리는 올해 53명으로 3명 감소해 전체 이사회 규모가 약 5%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자리를 줄인 기업은 SK하이닉스, 두산퓨얼셀, 에코프로비엠 등 3곳이다. SK하이닉스는 6명이던 사외이사를 5명으로 줄였으며, 두산퓨얼셀과 에코프로비엠도 각각 사외이사를 한 명씩 감소시켰다. CXO연구소는 "향후 사외이사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어 이사회를 점차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2019년 5.4%에서 올해 7.3%로 증가했다. 현대자동차, SK바이오팜, 한진칼, LG헬로비전 등이 여성 사외이사를 새로 영입했다. 또한 40대 젊은 사외이사도 6년 전 8.9%에서 올해 12.7%로 상승했다. 특히 1980년대생인 김주호(1982년생)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와 스티븐송(1981년생) 스카코리아 대표이사가 각각 멀티캠퍼스와 금호건설의 사외이사로 지목됐다.

'사외이사 돌려막기' 관행은 여전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올해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중 70% 정도는 다른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참신한 인물로 채워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올해 6년 임기가 끝나자마자 다른 회사로 바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도 10% 수준으로 나타나 구관이 명관이라는 인식과 함께 '사외이사 돌려막기' 현상은 올해도 여전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서는 같은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임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6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회사에서 6년 임기가 끝나면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돌려막기'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이창민 교수는 "사외이사의 역할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 주주 이익 대변인데 본연의 취지에 비춰보면 직업구성이 좋지 않다"라며 "일단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이 이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주주총회 시즌을 통해 기업들의 사외이사 구성이 다양화되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만, '돌려막기' 같은 관행은 여전히 남아있어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