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충실의무는 이사가 오직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돈을 개인적으로 쓰거나, 내부 정보를이용해 주식을 사고팔거나, 대주주가 자기 계열사에 유리한 계약을 몰래 체결해 회사를 희생시키면 안 된다.
둘째, 선관의무는 이사가 전문가 수준의 신중함으로 업무를 수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조사 없이 회사 자금을 투자해 큰 손실을 보게 하거나, 계약을 허술하게 검토해서 회사가 피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의무는 서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충실의무와선관의무를 마치 같은 것처럼 이야기하며, 주주 보호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선관의무가 있으니 충실의무 개정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왜곡한 논리다. 선관의무는 “경영을 잘못했느냐”를 문제 삼는 것이고, 충실의무는 “누구를 위해 경영했느냐”의 문제다. 즉, 선관의무가있다고 해서 이사가 반드시 소수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니다.
현재 법은 충실의무의 대상을 ‘회사’로만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주주가 회사를 이용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포장하면 처벌하기 어렵다.
한 식품회사의 대주주가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를 세웠다고가정해보자. 이 회사는 시장에서 1kg당 1,000원에 살 수 있는 원재료를 A사에 1,500원에 공급한다. 이로 인해 A사는 계속 손해를 보고 소액주주들은 배당도 줄고 주가도 하락해 피해를 본다. 하지만 대주주는 “품질이 좋아 회사에 유리한 거래”라며 A사를 대변한다. 현행법으로는 회사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이상 문제삼기 어렵다.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주주가 자신이 100% 소유한 회사를 상장회사와 합병시키면서, 가치를 부풀려서 소액주주의지분을 희석시킨다. 원래 500억원짜리 회사를 3,000억원으로 평가받게 하면서 자기 지분만 늘리고 소액주주의 지분을 줄인다. 대주주는 “성장 가능성이 있어서 평가가 높았다”고변명한다. 현행법상 이를 처벌하기가 어렵다.
이 같은 대주주의 횡포를 막으려면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대주주가 회사의 이익을 명분으로 자기 사익을 챙기는 행동을 막을 수 있다. 이제는 “회사가 피해를 봤는가”가아니라, “소수주주가 피해를 봤는가”가 중요한 법적 판단기준이 된다.
현재 법 체계는 허점이 많아 대주주들이 회사를 자기 돈처럼 이용할 수 있다. 이사의책임을 더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사가 충실의무와 선관의무를 동시에 위반하면 더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단순히 경영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위법이고, 주주들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반드시 끝까지 배상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 국회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어 법안의 시행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법안 시행이 지연되고, 주주 보호를 위한 개정안이시행되지 못할 위험이 크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대주주가회사와 주주를 자기 돈처럼 이용하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기업은 대주주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들의 것이다.
법이 모든 주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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