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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 대규모 유증에 뿔난 주주들

“자금 충분하다” 답변 1주일 뒤 증자 추진 … “뒤통수 맞았다” 성토

안재후 CP

2025-03-21 14:32:46

한화에어로 대규모 유증에 뿔난 주주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전격 발표하면서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기업 유상증자 역대 최대 규모로, 회사 측은 해외 방산 및 조선업 확장을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지난 20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총 595만500주를 주당 60만5000원에 신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신주 발행 물량 중 20%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되며, 기존 주주들은 보유 주식 10주당 약 1주를 청약할 수 있다. 발행가는 향후 1·2차 산정에 따라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회사 측은 조달한 자금을 해외방산 1조6000억원, 국내방산 9000억원, 해외조선 8000억원, 무인기용 엔진 3000억원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조선업체 오스탈(Austal) 지분 투자와 추가적인 글로벌 조선소 확보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자금은 2028년까지 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주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화에어로가 지난달 9일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 등 그룹사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취득하겠다고 공시한 바 있는데, 당시 한상윤 한화에어로 IR담당 전무는 "자본 조달 없이 현금 보유분과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충분하다"는 취지로 답변했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는 이 발언을 한 지 일주일 뒤인 지난달 19일에 유상증자 공동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과 기업 실사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인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라는 점에서 비판이 거세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이 지분 100%를 가진 사실상 가족 회사다. 한화임팩트의 주주는 한화에너지(52.1%)와 한화솔루션(47.9%)이다. 이 때문에 한화에어로가 작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약 1조4000억원)과 맞먹는 돈을 총수 일가가 가진 한화오션 지분을 사는데 쓰고, 사업 투자를 위해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한화오션 지분 인수 때문에 이번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 거점 확보 등을 위한 공격적 투자를 늘리기 위해 자금 조달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장은 납득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번 유상증자 발표 이후 전날 진행된 기업설명회(컨퍼런스콜)에서도 "굳이 유상증자가 필요했느냐"는 투자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노무라금융투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기업으로 신용등급이 양호한데도 주주 배려 없이 유상증자를 강행했다"고 지적했고, KB증권도 "시기와 규모가 예상을 벗어났고, 사용처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주주의 증자 참여 여부도 공개되지 않아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신한증권이 "한화가 증자에 자금 여력이 있는가"라고 묻자, 회사 측은 "한화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증권가는 투자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방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 이재광·정연승 연구원은 "증자 자금 중 1조6천억원은 해외 생산 체제의 강화에 쓰이는데, 유럽·중동·미국 등 시장 확대를 위해 현지 생산 거점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타당한 판단"이라며 "호주 조선사의 인수에도 8천억원이 배정되는데, 미국 내 군함 신조 관련해 사업 범위를 확장할 기회로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도 "현지화와 인수합병(M&A)은 방위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꼭 가야 할 길"이라며 "이번 투자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유럽 등을 대상으로 잠재 수주를 확보하려는 조처로 목표가 명확하며, 빠르면 올해 중으로 대규모 해외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시장에서는 한화에어로가 해외 거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공감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재무장으로 방산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당분간 국내 시장에선 대규모 무기 체계 사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회사의 현금흐름만으로도 충당할 수 있는 투자 규모인데, 주주가치 희석이 따르는 유상증자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결 영업이익 3조5천억원과 이후의 꾸준한 이익으로 투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유상증자를 자금조달 방식으로 택한 것은 아쉽다"며 "투자의견을 보류로 낮추고 현 적정 PER(주가수익비율) 20배를 유지할 만한 대단한 투자가 집행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화에어로가 앞으로 2년간 약 5조원의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럼에도 유상증자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지호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을 웃도는 한화에어로의 이익만으로 투자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진 21일 오전 10시 기준 약 15% 급락했으며, 한화(-13.37%), 한화시스템(-9.54%), 한화오션(-5.48%), 한화엔진(-5.48%), 한화비전(-4.81%) 등 한화그룹 계열사들도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지난해 말 32만원대에서 급등해 지난 18일 78만1천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23일 30만6500원에서 154.81% 상승한 수준이었다.

BNK투자증권의 이상현 연구원은 "양호한 현금 흐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유증에 대한 아쉬움은 일부 있다. 단 높은 주가 상승으로 4월 공매도 재개에 대한 우려가 일부 있었음을 볼 때 이번 유증은 '먼저 맞은 매가 덜 아플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짚었다.

금융감독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증자 규모가 역대급인 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99년 이후 처음 유상증자에 나선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이처럼 준비 없는 대규모 증자는 흔치 않다"며 "유상증자는 주식 희석 효과로 사실상 주가 매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황기에 주가 상승 효과만 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고 덧붙였다.

한화그룹은 과거에도 유상증자를 통해 주요 인수 자금을 조달해왔다.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수 당시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증자를 단행했고, 청약률은 84.52%였다. 당시 우리사주 청약률은 20% 배정 중 18.02%에 그쳤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 당시에는 2조원 규모의 증자가 이뤄졌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1조원), 한화시스템(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4000억원)가 참여한 바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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