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이은호 초대전,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려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의 고요한 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한지 위에 먹과 동양화 안료로 얹은 사유의 흔적들,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삶과 죽음의 여운. 이은호 작가의 초대전이 오는 4월 12일부터 27일까지 열리며, 관람객에게 자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을 건넨다.

이번 전시는 ‘생명의 순환성’을 주제로 한다. 생명이 생성되고 자라고, 노쇠하다 소멸하는 자연의 흐름. 이 단순한 순리를 작가는 오랜 시간 동양화 재료에 담아왔다. 그는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존재이며,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안고 산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진실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는, 탄생과 죽음 사이의 모든 감정들을 화면 위에 덧씌운다.

작업은 시처럼 시작된다. 한지에 먼저 자연주의적 글귀를 먹으로 써내려가고, 그 위에 상징적 이미지를 더한다. 먹의 번짐은 우연을 품고, 이어지는 선과 형상은 계획된 삶을 상징한다. 그의 말대로 “삶은 우연과 필연이 교직된 하나의 긴 여정”이다.

전시는 ‘물과 불’, ‘밝음과 어둠’, ‘봄·여름·가을·겨울’, ‘행복한 꿈’ 등의 부제로 구성된다. 대립적이면서도 공존하는 개념들이 반복되며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룬다. 자연처럼, 감정도, 시간도, 기억도 돌고 도는 것이다. 특히 ‘봄·여름·가을·겨울’ 연작 중 ‘겨울’은 작가가 부모를 차례로 떠나보낸 계절을 배경으로 만들어졌고, 흐릿한 배경과 화면 중심의 눈물 형상은 상실의 감정을 절제된 미감으로 담아낸다.


‘행복한 꿈’ 연작은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힘겨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때로는 꿈에서라도 ‘용’, ‘돼지’, ‘행복한 장면’을 마주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그려낸다. 이은호 작가는 “고단한 삶 속에서 작은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동물, 식물, 인공물, 상상 속 존재들이 숨어 있다. 멀리서 보면 추상화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삶의 단편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화면 속 기호는 원(圓), 선, 자연물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반복과 순환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이은호 작가는 한국화를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삶의 이치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탐구자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탐색이며, 인간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은유다.

이번 전시는 묻는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가. 한벽원미술관의 정적인 공간은 이 질문과 마주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장소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종이에 스며든 먹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은호의 초대전은 그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진실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전달한다.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