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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s View] LG ‘인화(人和) 정신’ 지탱해온 ‘장자승계’ 원칙

상남 구자경 회장 탄생 100주년에 되새기는 LG그룹의 경영철학

안재후 CP

2025-04-24 09:23:41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사진=LG그룹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사진=LG그룹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재계 대표적 명문가로 꼽히는 LG그룹이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70여 년 동안 '장자 승계'라는 단순하면서도 확고한 원칙에 따라 안정적인 경영 승계 모델을 구축해온 LG그룹이지만, 최근 구본무 회장 유족 간의 상속 분쟁은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과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장자 승계 전통과 LG의 경영 철학

LG그룹은 1947년 연암(蓮庵) 구인회 회장이 설립한 이래로 장자 승계 원칙을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기업의 안정성과 경영 철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2대 회장인 상남(上南) 구자경 회장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지분의 60%를 물려주었고, 다른 자녀들에게는 나머지를 분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 어떠한 분쟁도 없었으며, 이는 LG그룹만의 특별한 전통이자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상남 구자경 회장은 그룹을 이끌면서 인화(人和)와 기술 중심의 경영 철학을 강조했습니다.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사람 중심의 경영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LG그룹이 국내 기업 중에서 노사 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구자경 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이라는 신념으로 기술 입국을 도모했으며, 회장 재임 기간 중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기술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습니다. 1976년 민간 기업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 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키는 등 연구개발에 대한 그의 열정은 현재 LG그룹의 기술력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구자경 회장은 또한 투명경영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1970년 그룹 모체인 락희화학을 민간 기업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뒤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를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투명경영은 해외 글로벌 기업들과의 합작으로까지 이어져 LG그룹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무고승계'(無故承繼)의 전통입니다. 구자경 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LG가 초우량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젊고 의욕적인 사람이 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며 전격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유례없는 결단이었으며, 권력을 내려놓는 경영자의 모범 사례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구본무 회장 역시 이러한 경영 철학을 계승하여 책임경영과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LG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특히 전자, 화학,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LG전자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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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중인 상속 분쟁의 배경

구본무 회장은 2017년 건강 악화로 수술을 앞두고, 조카이자 양자로 입양한 구광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장남을 교통사고로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룹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LG그룹 재정관리팀장이었던 하범종 사장은 법정에서 "구본무 전 회장이 직접 작성한 메모와 서명을 통해 이러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서거 이후, 그의 지분 11.28% 중 8.76%를 구광모 회장이 상속받았으며, 나머지 지분은 두 딸에게 각각 2.01%와 0.51%로 분배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은 약 5천억 원 상당의 금융 자산과 부동산, 예술품 등을 상속받았습니다. 당시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은 구광모 회장이 그룹 지분을 계승하도록 합의했고, 합의문에 김 여사는 '화담 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라고 직접 서명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합의 후 4년이 지난 2023년 2월, 미망인 김영식 여사와 딸들은 "유언장이 존재한다는 거짓된 정보에 속아 합의했다"며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상속법에 따라 구본무 회장이 남긴 지분을 부인 1.5대 자녀들 각 1의 비율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자 승계라는 LG 가문의 전통은 불합리하다, 가문의 전통이 법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등의 주장을 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여러 약점이 있습니다. 법률에서 특정 권리에 대해 정해 놓은 행사 가능 기간인 '제척기간' 3년을 크게 넘긴 후에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점, 상속인들이 합의서에 직접 서명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또한 이런 논리라면 구본무 회장이 상남 회장에게 물려받은 11.3%도 전부 구본무 회장 몫이 아니고, 대부분 삼촌과 고모들 재산이라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상속 분쟁이 LG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가족 내분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LG그룹의 안정성과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서 이러한 소송은 기업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무노조·무분규' 전통을 이어온 LG는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손꼽혀왔는데, 이러한 이미지에 금이 갈 우려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LG그룹은 단순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많은 근로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수많은 국민이 LG그룹을 통해 고용되었고, 관련 협력사와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한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간 분쟁으로 경영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은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과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이런 소송은 기업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할 뿐입니다. 이는 결국 기업 가치 하락과 주주 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김영식 여사와 딸들에게도 궁극적으로는 손해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재계의 승계 과제와 LG의 교훈

이번 분쟁은 LG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재계 전반이 3,4세대 경영에 접어들면서 창업주 세대의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경우 10조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며 원만한 승계를 마쳤지만, 롯데의 형제 갈등은 여전히 그룹 전반에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승계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시장에 불확실성을 불러오고,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며, 더 나아가 오너 리더십의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습니다.

재계는 이제 상속을 단순한 자산 이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의 계승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구본무 회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사업보국'의 철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유언장의 형식 논쟁이나 상속 지분 다툼 속에 묻혀 잊힌다면, 이는 LG는 물론이고 한국 재계 전체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갈등이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허물 수 있습니다. 오너 가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판단과 시장의 반응을 불러오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사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과 자율적 조정 시스템을 재계 스스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상속과 승계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는 기업가의 철학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상남 구자경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LG그룹의 모든 관계자들은 그룹의 '초심'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고전 '채근담'에는 "일이 막히고 세력이 줄어든 사람은 마땅히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初心)을 생각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LG그룹의 초심은 무엇보다 인화(人和)와 기술 중심의 경영, 그리고 장자 승계의 전통과 원칙을 통한 안정적인 경영 환경 유지였습니다.

경남 진주시 승산리 구인회 창업 회장의 생가에는 창업 회장의 부친인 춘강(春崗) 공(公)을 추모하는 모춘당(慕春堂)이 있습니다. 모춘당에는 상남 회장의 증조부인 만회(晩悔) 공(公)이 만든 가훈이 걸려 있는데, 그 중에는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작은 분을 참지 못하면 마침내 어긋나게 된다", "선대 훈계를 삼가 이어서 바르게 할 뿐 변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가훈은 현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법원의 판결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암 회장과 상남 회장이 닦고 화담 회장이 키운 LG의 경영철학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창업 회장이 강조했던 인화는 물론 상남 회장이 강조한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와 합의, 무고승계 등의 소중한 가치들이 지켜져야 합니다.

구광모 회장이나 구씨 가문 전체는 물론 LG그룹 차원에서도 명심할 점이 있습니다. 상속 분쟁에서 지켜야 할 것은 ㈜LG 지분이 아닙니다. 지주사 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암·상남·화담 회장은 물론 만회 춘강 등 선대 어른들의 혼과 창업정신, LG의 경영철학입니다. 관용하고 자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소송전보다는 대화와 화해를 통해 LG그룹의 전통적 가치와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모든 관계자들의 지혜로운 선택일 것입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법원에 갈 게 아니라 모춘당에 걸려 있는 가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LG그룹의 창업자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모습일 것입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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